SundayWeekly – 퀸즐랜드 일요신문

보이스(Voice). 그리고 한국인의 보이스는?

송종혁(John Song)/ 호주연방검찰청 주임검사, 호주한인변호사협회(KALA) 총무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한국계 호주인들이 어떻게 이곳 호주에서 번창하고, 호주를 진정으로 ‘고향처럼’ 느낄 수 있는가?”이다. 다문화를 지향하는 호주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능력에 따라 마음껏 일하고, 사업하고, 이민 공동체를 구축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는 지에도 관심이 있다. 부모님의 세대가 영어를 완벽하게 못하신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고국을 떠나온 부모님들이 ‘올인'(all in)한 호주국가로부터 얼마나 보호받고, 그것을 체감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관심이 있다. 또한 한국교민들이 ‘우리끼리’만이 아니라, 우리와 외모, 언어, 문화가 전혀 다른 민족들에게도 어떻게 좋은 이웃으로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에도 관심이 있다.

비슷한, 너무나 비슷한

6년 전, 필자는 NSW 지역 원주민 법률 서비스(Aboriginal Legal Service)의 형법 변호사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주변 환경이 변했다. 매일 원주민들과 아주 많이 교류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법정에서, 감옥에서, 유흥업소에서, 그리고 그들의 집에서.

당시 객지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한국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의외로 많은 면에서 그들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 날 원주민 동료 한 명이 리셉션에서 필자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필자는 어머니에게 하듯이 ‘응~?’ 하고 대답했다. 그 ‘어머니’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국말인 데도 원주민말처럼 알아듣고, 필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한 박자도 놓치지 않고 연결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 문화와 마찬가지로 호칭에 대해서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가족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더라도 ‘린 이모'(Aunty Lyn), ‘에드 삼촌'(Uncle Ed), ‘할아버지'(Pop) 라고 하면서. 또한 한국 문화와 마찬가지로 원주민 문화에서도 명예와 수치심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법정 심리와 선고 중에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작은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시드니 가족과 두고 온 집, 그리고 한인 친구들을 생각하고, 한국정서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이때처럼 원주민과 한국인의 유사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인과 토착 원주민들(First Nations People)은 공통점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이다. 두 민족 모두 ‘자국의 땅에서 낯선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알고 있다. 즉 한국이 일본에게 강토를 강탈당했을 때 나라 없는 서러움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원주민 역시 백인에게 영토를 빼앗긴 서러움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이처럼 한국민족과 원주민은 국토와 모국어를 빼앗긴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두 민족 모두 인간 이하로 대우받는 잔인함과 부당함, 부도덕을 다양한 모습으로 체험했다. 국권을 상실한 채 한 민족의 정체성과 자국민으로 미래를 형성할 권한조차도 없었던 어두운 역사를 안고 있다. 오늘날까지 두 민족 모두 과거의 사건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긴장감과 씨름해야 한다. 한 가지 구별되는 점은 결국 한국은 일본 식민지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달성했다는 사실이다.

보이스(Voice), 그 바른 이해를 위하여

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호주인들은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섬주민의 목소리'(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Voice)라는 헌법 자문기관의 설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약칭으로 ‘보이스’(Voice)라 불리는 이 국민투표의 중요한 개념은, 2017년도에 호주 역사상 원주민들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인정하기 위해 제안된 가장 큰 함의가 담긴 성명서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울루루 성명'(Uluṟu Statement from the Heart)에 근거를 두고 있다.

보이스에 관해 떠돌고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호주한인변호사협회(KALA) 집행위원회는 최근 보이스(Voice)를 진심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헌법 자문기관으로서 ‘보이스 설립’ 제안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요구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는 우리 교민들이 앞서 언급한 대로 호주 원주민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들이 겪고 있는 극도의 불이익을 개선하는데 중요하고도 진일보한 단계가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또 이 보이스가 합리적인 이유는 의회를 구속하거나 자체 법률을 발의할 수 있는 고유한 권한 없이, 단순히 ‘자문 기관’으로 설립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보이스의 구성, 기능, 권력, 절차와 방법, 구조 등을 비롯해 보이스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사안은 선출직으로 구성된 의회가 권한을 갖고 있다. 이번에 제안된 보이스는 민주주의에서 적용되는 책임성과 투명성 그리고 엄격함을 적용 받는 협의체이다.

한마디로 보이스 설립 제안은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느 투표 때와는 달리 투표 용지는 작으며 질문은 간단하다. 즉 “호주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주민 보이스라는 헌법자문기관의 설립에 동의합니까?”라는 질문에 찬성하면 예(Yes), 반대하면 아니오(No)라고 쓰면 된다.

투표는 한국계인 우리가 이제까지 다문화 사회인 호주에서 여러 민족으로부터 ‘좋은 이웃’이라는 평판을 받아온 터전 위에, 더 좋은 명성을 쌓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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