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주택담보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공식적인 연체나 채무불이행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 가구가 늘면서, 호주중앙은행(RBA)이 가계의 실제 재정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RBA는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위험이 다시 커질 경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모기지 업계에서는 현재의 낮은 연체율만 보고 가계가 높은 금리를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문제는 상당수의 어려운 차주들이 실제 연체에 들어가기 전에 은행에 먼저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들은 상환 유예나 이자만 납부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대출기간을 연장하는 등 ‘하드십(hardship)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경우 차주가 당장 연체자로 분류되는 것을 피할 수 있어 공식 연체율이나 채무불이행 통계에는 가계의 어려움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Digital Finance Analytics의 마틴 노스 대표는 소득에 비해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커지면서 위험이 높아지고 있지만, 은행들이 하드십 프로그램과 이자만 상환하는 대출, 리파이낸싱 등을 활용해 채무불이행을 막고 있기 때문에 실제 연체율은 여전히 낮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출 규모가 큰 가구나 소규모 사업소득에 의존하는 차주들에게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Refinance.com.au의 모기지 브로커 에이단 하틀리 역시 최근 하드십 지원을 요청하는 주택 소유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출산이나 근무시간 감소, 실직 등 예상하지 못했던 소득 변화가 발생하면서 대출금을 제때 갚기 어려워진 가구들이 실제 연체가 발생하기 전에 은행과 상환조건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RBA도 하드십 지원 규모를 확인하고 있지만 신용위험을 판단할 때 상대적으로 표준화된 지표인 연체율과 채무불이행률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상환 유예나 이자만 납부하는 방식으로 전환한 차주들이 통계상 정상 차주로 남아 있을 경우, 실제 가계가 감당하고 있는 금리 부담이 과소평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RBA의 미셸 불록 총재는 지난달 호주 주택대출자들이 재정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심각한 상환 어려움에 직면한 차주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고 금융안정 위험도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하드십 지원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대출자가 은행과 공식적인 하드십 상환조정을 체결하면 해당 사실이 최대 12개월 동안 신용기록에 표시될 수 있다. 이후 더 낮은 금리를 찾아 다른 은행으로 리파이낸싱하려 해도 새로운 금융기관이 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대출 승인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금융기관은 정상적인 대출 상환 기록이 다시 12~18개월 정도 쌓인 뒤에야 신규 대출을 검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틀리는 설명했다.
결국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구가 당장의 연체를 피하기 위해 하드십 지원을 신청했다가 오히려 높은 금리의 기존 대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가계의 실제 부담이 상당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Finder가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는 주택담보대출자의 38%가 지난 7월 모기지 상환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Finder의 주택대출 전문가 리처드 휘튼은 주거비가 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출 가운데 하나인 만큼 상당수 가구가 다른 소비를 줄이거나 저축을 사용하는 방식으로라도 모기지 연체를 피하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드십 지원은 단기적으로 가구가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돕지만 상환액을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중단하면 전체 대출기간이 길어지고 장기적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도 증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낮은 공식 연체율만으로 호주 가계가 높은 금리를 충분히 감당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RBA가 이러한 ‘숨은 모기지 스트레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이미 한계에 가까워진 일부 주택 소유자들의 재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