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원주민 대변할 헌법 기구를 세우고 권리를 개선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압도적인 부결 결과로 귀결 되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지난 14일 개헌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의 개표 도중 개헌안 부결을 인정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투표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한다며 개헌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호주인을 정의 내리거나, 분열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 전부터 야당은 이번 선거가 분열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주장해 온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ABC 등 호주 현지 매체들은 6개주(州) 모두에서 유권자 과반이 반대했다. 호주에서는 전국적으로 투표자 과반이 찬성하고, 또 6개주 중 4개주에서 과반 찬성이 나와야 개헌안이 가결된다.
호주에서 원주민은 약 3.2%로 적지 않은 수다. 이번 선거에서는 호주 원주민과 토러스 해협 도서민들을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대변할 헌법 기구 보이스를 설립하는 내용의 개헌에 찬성하는지를 물었다. 호주 헌법 제정 당시 원주민은 사람이 아닌 ‘토착 동물의 부류’로 취급됐다. 주인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단 명분을 위해서였다. 또 원주민 가정에서 아이들을 강제로 빼앗는 등 수십 년간의 차별적인 정부 정책으로 인한 피해에 호주 총리가 사과한 지 15년 만의 일이었다.
실제 개헌 절차를 밟기 이전까지 호주에서 이에 대한 지지율은 80%(지난해 5월 기준)에 달하는 등 이견이 크게 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투표가 시작되자 호주 사회는 찬반으로 극명하게 갈렸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졌다.
원주민 지위 향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앨버니지 총리를 비롯한 개헌 지지자들은 개헌을 통해 헌법에서 원주민을 인정하고,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야당인 자유당과 국민당 연합은 헌법에 특정 인종을 명기하는 것은 호주인을 인종에 따라 차별해 ‘사회 분열’을 가져온다고 반대했다. 보이스라는 조직 역시 권한이나 기능이 명확하지 않아 위험하다고 지적하면서 “잘 모르겠다면 ‘반대’를 찍어라”라는 캠페인을 펼쳤다.
호주 내 많은 이민자 사회에서도 원주민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는 역차별이라면서 반대했다. 또 강성 원주민 권익단체도 “개헌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긍정적이지 않았다.
결국 결과는 부결로 이어졌고 앤서니 앨버지니 호주 총리의 향후 행보도 좁혀질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