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 H Lawyers
차유진 수석 변호사 & 조형순 변호사
당사자들이 원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계약의 자유’ 원칙은 호주 계약법의 주요한 기본 원칙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계약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제정법(입법기관에 의해 제정된 법)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다닙니다. 2021년, 호주 대법원은 Price v Spoor 소송을 진행하며, 퀸즐랜드 주의 Limitation of Actions Act 1974 (‘Limitation Act’) 에 명시된 소송권 소멸시효 적용을 계약 당사자들의 합의하에 계약서에서 배제한 것이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으며 합법적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은 계약의 자유 원칙이 미치는 범위가 제정법으로 정한 소멸시효 기간에까지 이를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건 배경
1998년, 피저당권자인 Price와 저당권자인 Spoor는 두 건의 담보대출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만기일인 2000년 7월이 되었지만, Price는 32만 달러에 이르는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017년, Spoor는 Price에게 받지 못한 대출금 상환과 담보로 저당잡은 토지 소유권 이전을 위해 퀸즐랜드 주 대법원 (Supreme Court of Queensland) 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Limitation Act상에는 계약 위반 및 토지 상환에 대한 소송권 소멸시효가 각각 6년과 12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 Spoor는 대출 상환 기간 만료일로부터 17년이 지난 후 소송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법적 소멸 시효가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Price측에서는 이미 Limitation Act에서 규정하는 소송의 소멸 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Spoor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Spoor는 두가지 담보대출 계약서의 제 24조항에 따라 Price가 소멸시효를 근거로 변론을 제기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일축하였습니다.
쟁점이 된 담보대출 계약서의 제 24조항은 아래와 같이 작성되었습니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어떠한 법률 조항도 저당권자의 권한과 보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피저당권자의 의무사항을 축소, 중단, 연기 혹은 소멸되게 할 가능성이 있는 법률 조항들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계약에서 제외된다는 점에 피저당권자와 저당권자는 동의한다.”
그러므로 재판부에 놓인 과제는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을 통해 제정법에서 정한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제외하는 것이 가능한지 판가름하는 것이었습니다.
호주 대법원 판결
호주 대법원은 예전에 이미 다른 소송건들을 통해 소멸시효 제한과 관련하여 다룬 적이 있습니다. The Commonwealth v Mewett (1997) 191 CLR 471 소송에서 Gummow 대법관과 Kirby 대법관은 소멸시효에 따른 법적 제한은 법원의 사법권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제수단으로서 변론에 사용될 수 있는 성격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또한,Westfield Management Ltd v AMP Capital Property Nominees Ltd (2012) 247 CLR 129소송에서는 개인이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하면서, 그러나 만약 해당 계약이 법률의 제정 목적에 위배되거나 공공의 이익을 저해하는 경우에는 해당 계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고 결정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의 판결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 소멸시효는 사건 당사자의 변론을 위해 부여된 법적인 권리다.
- 법과 공공질서에 위반되지 않는 한 자신에게 주어진 법적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
Price v Spoor 소송에서, 호주대법원은 일차적으로 Limitation Act상에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제외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시적인 내용이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에 따라 호주 대법원은 신속한 소송 처리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Limitation Act하에 소멸시효가 명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권리는 개인이 소송시 변론에 사용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적 혜택에 해당되며 소멸시효가 종료된 뒤라도 법원의 사법권을 제거하려는 의도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또한, 계약 당사자들이 담보대출 계약서 제 24조항 내용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Limitation Act를 포함하여 폭넓게 적용되도록 의도했다는 점을 근거로, 해당 계약 조항이 Limitation Act로 부여된 권리를 효과적으로 포기하도록 하였다고 밝혔습니다.
Steward 대법관은 Kiefel 대법원장과 Edelman 대법관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더 나아가 계약서에 제 24조항를 포함한 것은 계약의 자유를 보장받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합법적 조정이라고 강조하며, Ringrow Pty Ltd v BP Australia Pty Ltd (2005) 224 CLR 656 판결에서 언급된 계약법의 중요한 속성에 대해 인용하였습니다.
“계약의 자유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의사결정 능력을 갖춘 개인들에 의해 성립된 거래를 사법권의 개입으로 무효화시킬만한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사건의 함의
Price v Spoor 판결에서 눈여겨 봐야할 것은 호주 대법원이 공공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Limitation Act 에 명시된 법적 소멸시효를 당사자들이 계약을 통해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번 판결을 다른 상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법원은 Price v Spoor의 판결을 내리는 과정에서 Limitation Act의 목적 및 해석과 더불어 사건의 핵심 쟁점이 된 계약 조항에 대한 해석을 동시에 고려하였습니다. 소멸시효와 관련해 호주에서는 주마다 조금씩 상이한 제정법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 주의 입법과 관련된 정책적 배경은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제정법을 통해 부여된 법적 권리를 제한하는 계약 조항은 집행이 불가하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정근로법으로 근로자에게 보장하는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양자간의 고용계약으로 무효화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건 당사자들이 법적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계약을 통해 배제한것이 유효한지의 여부는 재판시 계약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계약을 통해 소멸시효를 배제하거나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계약서에 포함시켜 작성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계약 위반에 대한 집행이 가능하도록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작성일: 2022년 3월 3일
문의: H & H Lawyers
전화: +61 2 9233 1411 이메일: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www.hhlaw.com.au
[면책공고]
본 칼럼은 작성일 기준 시행되는 법규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며 일반적인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필자 및 필자가 소속된 법무법인은 이후 법규의 신설, 개정, 폐지로 인한 변경 사항 및 칼럼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로 인해 발생한 직·간접적인 손해에 대해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상기 내용에 기반하여 조치를 취하시기에 앞서 반드시 개개인의 상황에 적합한 법률자문을 구하시기 바랍니다.